국립발레단의 런던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 4.10~13 참가기
새롭게 떠오르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과 현지 반응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내 린버린 극장에서 진행된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는 참여 단체의 공개만으로도 이미 매진 행렬을 이뤘다. 이는 로열 발레가 2019년부터 각국의 발레단을 초청해 안무가들의 초기 작업을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연례행사로, 작품 발표 후에는 안무가, 평론가 등 전문가들에게 피드백과 코치를 받을 수 있는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발레단을 위한 데일리 클래스를비롯해 안무가로서의 경력 구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리더십 교육, 조명 워크숍 등도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주최 단체인 로열 발레가 두 작품을 선보였고, 버밍엄 로열 발레와 한국의 국립발레단, 그리고 노르웨이·독일·벨기에·스코틀랜드·체코·프랑스의발레단에서 각 한 작품씩 총 열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런던에, 한국의 봄을 풀어내다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에 있는 린버리 극장에서 열렸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코번트 가든 광장과 이어져 있으며, 로열 오페라, 로열 발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한다. 린버리 극장은 총 350석 규모로, 3층으로 이뤄진 객석은 짙은 색의 나무 장식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무대를 감싸고 있다.
공연은 국립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 활동하는 안무가 이영철의 ‘계절 ; 봄’(2019)으로 막을 열었다. 이영철과 함께 국립발레단 무용수 김별과 이현규가 무대에 올랐다. 김별은 손목부터 발목까지 꽃으로 장식된 분홍색 계열의 시스루 원피스를, 이영철과 이현규는 상체를 드러낸 채 짙은 녹색 계열의 치마를 입었는데, 치맛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꽃봉오리처럼 숨겨져 있던 두 가지 톤의 분홍색 색채가 드러났다.
팔과 어깨를 독특하게 분절하는 동작과 섬세한 손동작, 한국 무용을 연상시키는 발동작은 빠르게 이어지는 열 개의 작품 중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작품은 가운데 하얀 원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검은 댄스플로어와 대비되는 하얀 원이나 붉은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볼 수 없는 설정이었다. 10여 분 간의 안무 이후, 바로 다음 팀으로 전환되는 공연의 특성상 대부분의 무대가 세트 없이 조명만으로 구성되는 분위기 속에서 ‘계절 ; 봄’은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라이브 연주 또한 다른 무대와의 큰 차별점으로 다가왔다.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의 매혹적인 가야금 연주와 한국어로 불린 노래는 큰 박수를 받았다. “넌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꽃이길”이라는 짧은 설명에서 느껴지듯, 봄날처럼 아름다운 무대였다.‘계절 ; 봄’은 국립발레단(KNB)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 5’에서 2019년 7월 초연한 작품이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는 차세대 안무가를 길러내기 위해 2015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매년 진행해 오고 있는 프로젝트다. 강수진 단장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특히,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로 탄생한 한국 창작 발레를 선보임으로써 그동안 이어온 프로젝트의 의미가 빛을 발했다.
초안의 작품이지만, 개성은 충만했다.
로열 발레는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집단적 열망과 춤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진자의 흔들림 같은 작은 현상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안무가들은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으며, 열정과 갈등, 불안, 시간과 일상, 슬픔과 상실 등 여러 주제를 표현했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오노 요코(1933~)의 전시에서 영감을 받은‘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악수하지 않는다’로,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는 ‘무시 당하지만 견딜 수 없는’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듀엣 동작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의 밀고 당김을 표현했는데, 남녀 무용수가 표현한 파드되(2인무)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무용수 안리 스기우라는 자신감 넘치는 무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달빛’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브로드스키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에 맞춰 기교를 뽐내며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전했다.
버밍엄 로열 발레는 ‘테트라’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슈만의 피아노 5중주 Op.44에 맞춰 두 쌍의 남녀 무용수가 절도 있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검은색 정장 차림에 사각형으로 구획 지어진 조명 안에서 묵직하게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표현했다. 이에 반해 체코 브르노 국립극장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기’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움직임으로 사회적 역할에 대한 탐구를 경쾌하게 담아냈다. 파스텔 색조의 폴로 티셔츠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려 신은 양말 등으로 시종 진지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전환했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할수록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 상황들을 기발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작품은 로열 발레의 수석무용수인 매튜 볼의 ‘To and Fro’였다. 진자의 흔들림에서 영감을 받아, 파트너와의 주고받는 에너지를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발전 단계에 있는 작품 초안이었지만, 각국의 무용수들은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토슈즈와 고전 발레의 안무를 포함한 팀도 있었지만, 양말을 신고 움직임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시도가 많았다. 여러 단체가 차례로 공연하는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음악과 조명, 의상 등으로 작품의 주제를 강조했으며, 무엇보다 훈련된 몸과 숙련된 안무로 십여 분이라는 시간 안에 각각의 개성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의 작품과 뛰어난 무용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의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모든 참여 단체가 작품을 선보인 후, 안무가들이 모두 나와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몸의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헌신한 이들에게 관객은 힘찬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국립발레단·로열 발레
출처 : 월간객석 https://auditorium.kr/
국립발레단의 런던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 4.10~13 참가기
새롭게 떠오르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과 현지 반응
이번 행사에서는 주최 단체인 로열 발레가 두 작품을 선보였고, 버밍엄 로열 발레와 한국의 국립발레단, 그리고 노르웨이·독일·벨기에·스코틀랜드·체코·프랑스의발레단에서 각 한 작품씩 총 열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런던에, 한국의 봄을 풀어내다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에 있는 린버리 극장에서 열렸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코번트 가든 광장과 이어져 있으며, 로열 오페라, 로열 발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한다. 린버리 극장은 총 350석 규모로, 3층으로 이뤄진 객석은 짙은 색의 나무 장식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무대를 감싸고 있다.
공연은 국립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 활동하는 안무가 이영철의 ‘계절 ; 봄’(2019)으로 막을 열었다. 이영철과 함께 국립발레단 무용수 김별과 이현규가 무대에 올랐다. 김별은 손목부터 발목까지 꽃으로 장식된 분홍색 계열의 시스루 원피스를, 이영철과 이현규는 상체를 드러낸 채 짙은 녹색 계열의 치마를 입었는데, 치맛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꽃봉오리처럼 숨겨져 있던 두 가지 톤의 분홍색 색채가 드러났다.
팔과 어깨를 독특하게 분절하는 동작과 섬세한 손동작, 한국 무용을 연상시키는 발동작은 빠르게 이어지는 열 개의 작품 중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작품은 가운데 하얀 원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검은 댄스플로어와 대비되는 하얀 원이나 붉은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볼 수 없는 설정이었다. 10여 분 간의 안무 이후, 바로 다음 팀으로 전환되는 공연의 특성상 대부분의 무대가 세트 없이 조명만으로 구성되는 분위기 속에서 ‘계절 ; 봄’은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라이브 연주 또한 다른 무대와의 큰 차별점으로 다가왔다.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의 매혹적인 가야금 연주와 한국어로 불린 노래는 큰 박수를 받았다. “넌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꽃이길”이라는 짧은 설명에서 느껴지듯, 봄날처럼 아름다운 무대였다.‘계절 ; 봄’은 국립발레단(KNB)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 5’에서 2019년 7월 초연한 작품이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는 차세대 안무가를 길러내기 위해 2015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매년 진행해 오고 있는 프로젝트다. 강수진 단장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특히,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로 탄생한 한국 창작 발레를 선보임으로써 그동안 이어온 프로젝트의 의미가 빛을 발했다.
초안의 작품이지만, 개성은 충만했다.
로열 발레는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집단적 열망과 춤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진자의 흔들림 같은 작은 현상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안무가들은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으며, 열정과 갈등, 불안, 시간과 일상, 슬픔과 상실 등 여러 주제를 표현했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오노 요코(1933~)의 전시에서 영감을 받은‘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악수하지 않는다’로,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는 ‘무시 당하지만 견딜 수 없는’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듀엣 동작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의 밀고 당김을 표현했는데, 남녀 무용수가 표현한 파드되(2인무)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무용수 안리 스기우라는 자신감 넘치는 무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달빛’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브로드스키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에 맞춰 기교를 뽐내며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전했다.
버밍엄 로열 발레는 ‘테트라’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슈만의 피아노 5중주 Op.44에 맞춰 두 쌍의 남녀 무용수가 절도 있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검은색 정장 차림에 사각형으로 구획 지어진 조명 안에서 묵직하게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표현했다. 이에 반해 체코 브르노 국립극장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기’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움직임으로 사회적 역할에 대한 탐구를 경쾌하게 담아냈다. 파스텔 색조의 폴로 티셔츠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려 신은 양말 등으로 시종 진지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전환했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할수록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 상황들을 기발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작품은 로열 발레의 수석무용수인 매튜 볼의 ‘To and Fro’였다. 진자의 흔들림에서 영감을 받아, 파트너와의 주고받는 에너지를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발전 단계에 있는 작품 초안이었지만, 각국의 무용수들은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토슈즈와 고전 발레의 안무를 포함한 팀도 있었지만, 양말을 신고 움직임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시도가 많았다. 여러 단체가 차례로 공연하는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음악과 조명, 의상 등으로 작품의 주제를 강조했으며, 무엇보다 훈련된 몸과 숙련된 안무로 십여 분이라는 시간 안에 각각의 개성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의 작품과 뛰어난 무용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의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모든 참여 단체가 작품을 선보인 후, 안무가들이 모두 나와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몸의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헌신한 이들에게 관객은 힘찬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국립발레단·로열 발레
출처 : 월간객석 https://auditorium.kr/